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노서동 금팔찌 (문단 편집) == 내용 == ||[[파일:경주 노서동 금팔찌2.jpg]]|| || 경주 노서동 금팔찌와 [[경주 노서동 금목걸이]], [[경주 노서동 금귀걸이]]를 함께 찍은 사진 || 지름 8.3cm, 무게 개당 216.3g. 경주 [[대릉원|노서동 215번지 고분]][* [[문화재청]]이나 [[두산백과]]에서는 '215'''호''' 고분'으로 표기하고 있으나, 공식적으로 [[https://terms.naver.com/entry.nhn?docId=1637990&cid=43065&categoryId=43065|노서동 고분]]은 경주고분 일련번호로 128호∼141호인 13기의 봉토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엄밀히 말하면 215'''호'''는 없다. 현 노서동 21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215란 번호가 붙었으므로 [[http://encykorea.aks.ac.kr/Contents/Item/E0002858|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경주노서리고분군]] 항목처럼 여기서는 '215'''번지''' 고분'으로 표기하였다.]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순금 팔찌로 제작 연대는 명확하진 않지만 대략 5~6세기(서기 400~500년대) 사이로 추정된다. 순 황금으로 팔찌 형태의 금형을 만든 후 납작한 단면 바깥쪽에 각각 59개씩의 돌기를 내어 하나하나에 [[옥]]을 정성들여 상감하였다. 이 돌기 좌우에는 4마리 [[용]]이 입을 벌려, 서로 다른 용의 꼬리를 물려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새겼다. 몸에는 비늘을 세밀하게 조각하였고 눈은 음각하였다. 그 화려함과 세심함이 동시기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, 손에 꼽히는 뛰어난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. [[경주 노서동 금목걸이]], [[경주 노서동 금귀걸이]]와 세트인 작품으로, 1,500년 전 당시 [[신라]]의 높은 생활수준과 금세공 기술수준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. 1967년 6월 21일 그 중요성을 인정 받아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